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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목이 고려거란전쟁인 이유

by 될놈입니다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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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목이 고려거란전쟁인 이유

 

 

 

드라마 제목으로 주인공들 이름을 쓰기도하는데...

최수종이 주인공인 '강감찬'이 아니라 '고려거란전쟁'인 이유

 

 

 

 

 

 

 

 

 

 

 

 

 

 

 

 

는 바로 '양규' 장군 때문...

 

 

 

강감찬 못지않게 고려거란전쟁에서 맹활약했던 문관이자 무관.

 

서희가 공세를 이겨낼 기틀을 마련하고, 강감찬이 대승리로 끝냈다면 

양규는 가장 암울했던 멸망의 위기를 막아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음 

 

(고려의 문벌귀족 특성상 고위급 장수들은 전부 문관 출신임.

강감찬도, 서희도 무관이 아닌 문관 출신)

 

 

 

 

 

 

대거란전쟁 이전 양규의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생을 자세히 알 수는 없음

 

거란의 40만 대군이 양규가 지키고 있던 흥화진을

7일간 공격했으나 3,000명의 병사들로 성을 지켜냈음

 

양규의 전임 도순검사가 목종을 폐위시킨 강조였음.

양규는 강조의 후임임.

요나라 황제인 성종이 강조의 대군을 무너트리고 처형했는데

이 때 항복문을 강조의 서신으로 위조하여 양규에게 보냈음 

하지만 양규는 

'임금의 명을 받고 온 것이지 강조의 명을 받은 것이 아니다'며 항복을 거부했음.

 

 

 

 

 

 

양규의 진짜 맹활약은 흥화진 전투 이후로 시작되었음

 

 

 

 

 

 

흥화진을 막아낸 양규는 7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통주까지 왔음

20만 명의 거란 대군에 의해 길이 막혀있는 상태였는데

이걸 소수 병력으로 은밀히 남하한거임

 

그리고 이 부대를 끌고 곽주로 진격해 

야밤에 6,000명의 거란 수비군을 몰살 시키고 빼았겼던 곽주성을 탈환했음.

 

이 곽주전투가 고려거란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승리였음.

거란은 고려인 포로 수만 명을 납치해서 청천강까지 올라갔는데,

귀주 별장 김숙흥과 중랑장 보량 그리고 양규까지 합세해

2,000명의 거란군 목을 베고 고려 백성 3,000명을 구출해냈음

 

양규는 원군도 없이 오로지 본인의 병사들로만

1개월 사이 7전 7승을 이뤄냈음.

양규가 구출한 고려인 포로는 무려 30,000명에 이르렀음

 

양규에 대한 기록이 어떻게 되어있냐면

[거란의 전력이 양규의 전력에게 계속 갉아 먹히고,

뒤에서 동에서 서에서 번쩍하고 병력수가 얼마인지도 모르겠고

거란군은 황제부터 병사들까지 어마어마한 공포감을 느꼈을것이다]

 

 

 

 

 

 

 

 

양규는 당대 고려의 지휘관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음.

수성정, 공성전 모두 뛰어난 장수이고

고려때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들중 한명이었다고 볼 수 있음.

 

여요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

현종은 양규와 김숙흥을 공신으로 삼았음.

 

삼한후벽상공신이라는 공신호를 추증했는데

이건 개국공신들에게만 내리는 공신호로 

최고의 공신으로 삼았다는 얘기임.

 

 

 

 

 

 

 

양규는 군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수 많은 적병을 죽이고

요나라 황제 성종을 퇴각시켰으며 마지막 한 명의 백성까지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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